연산군은 조선 제10대 왕으로 복잡하고 비극적인 가족 관계를 지닌 왕이었습니다.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가계도는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출생과 부모 관계란

연산군(燕山君, 1476~1506)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입니다. 본명은 이융(李㦕)이며, 1476년 11월 23일(음력 11월 7일) 한성부 정궁에서 출생했습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판봉상시사 윤기견의 딸로,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에 봉해졌습니다. 1476년 연산군을 낳은 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투기가 심하고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으로 인해 1479년 폐비가 되었습니다. 결국 1482년 독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이는 훗날 연산군의 복수심과 갑자사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연산군의 왕비와 후궁들
연산군은 거창군부인 신씨를 정비로 맞이했습니다.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의 넷째 딸이자 좌의정 신수근의 누이로, 1488년 세자였던 연산군과 가례를 올렸습니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이 폐위된 후 폐비 신씨가 되었으며, 1537년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 간 연산군을 위해 살았습니다.
연산군은 정비 신씨 외에도 여러 후궁을 두었는데, 대표적으로 장녹수가 있습니다. 연산군은 거창군부인 신씨와의 사이에서 8명의 자녀를 얻었으며, 후궁들과의 사이에서는 5남 7녀를 두었습니다. 특히 연산군은 딸을 매우 아끼는 딸바보였으며, 장녹수와의 딸 영수와 거창군부인 신씨와의 딸 휘신공주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연산군의 자녀들과 그들의 운명
정비 신씨 소생 자녀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 사이에는 2남 1녀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 폐세자 이황(李𩔇): 1498년 1월 10일 출생한 장남으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중종반정 후 폐세자가 되어 1506년 9월 24일 10세의 나이에 사사되었습니다
- 창녕대군 이성: 거창군부인 신씨 소생의 차남으로, 연산군이 가장 아꼈던 아들이었으나 중종반정 후 함께 사사되었습니다
- 휘신공주 이수억: 연산군과 신씨의 외동딸로, 처음에는 휘순공주로 봉해졌다가 휘신공주로 작호가 변경되었습니다
후궁 소생 자녀
연산군은 후궁들과의 사이에서도 여러 자녀를 두었습니다:
- 양평군 이인: 후궁 소생의 아들로 중종반정 후 사사되었습니다
- 이돈수: 후궁 소생의 아들로 역시 중종반정 후 처형되었습니다
- 영수: 장녹수와의 딸로 연산군이 특별히 사랑했던 딸입니다
연산군 후손의 대가 계승
중종반정 후 연산군의 아들들이 모두 사사되면서 직계 후손이 단절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외손봉사(外孫奉祀) 제도를 통해 연산군의 제사가 계승되었습니다.
휘신공주는 1503년 구문경과 결혼하여 아들 구엄을 낳았습니다. 구엄은 연산군의 외손자로서 외손봉사를 맡아 연산군의 제사를 지내며 왕실로부터 특혜를 받았습니다. 구엄에게는 적자가 없었고, 그가 사망한 후에는 외손자인 이안눌이 연산군의 제사를 계승했습니다.
이안눌은 구엄의 친외손자는 아니었으나, 이필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이필의 부인이 구엄의 딸이어서 연산군의 제사를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연산군의 제사는 부인 신씨로부터 시작되어 외손자 구엄, 그리고 이안눌과 그의 후예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